'스틸니스 Stillness'. 저에게는 다소 생소한 단어였습니다. 이는 영어로 '고요'를 뜻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철학 학파들은 저마다의 길을 걸었지만 결국에는 단 하나의 중대한 목적지에 도달했습니다. 그들이 얻은 결론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려거든 반드시 자기 안의 고요 Stillness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시끄럽고 바쁜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그 안에서 살아남고 번영하길 바란다면 말입니다. 고요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하며 우리의 관점을 날카롭게 다듬어줍니다. 고요는 매사에 감사하고 경탄할 여유를 만들어줍니다. 우리를 인내하게 하고 성공하게 합니다. 천재들의 통찰력을 파헤치는 열쇠이자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도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비결, 그게 바로 고요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우리 안의 고요를 찾아내려면 세 가지 영역에 집중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건 바로 정신과 영혼, 그리고 몸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고요를 찾아서 그 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신의 영역
첫 번째 영역은 느끼고 생각하며 판단하는 정신입니다. 아래의 내용이 정신의 영역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 지금은 지금뿐이다, 현재에 집중하라.
- 인내하라. 해답을 찾는 생각의 태도는 인내이다.
- 일기를 쓰라. 일기는 머릿속 잡음을 잠재우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다.
- 침묵하라. 진짜 필요한 소리를 듣기 위한 조건은 침묵이다.
- 고요를 찾기위해선 자신감이 필요하다.
"현재에 집중하라"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생각하고, 행동하고, 얘기하고, 걱정하고, 회상하고, 희망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지금 이 순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를 씁니다. 기억하십시오. 굉장한 일이 미래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일은 없습니다. 행복도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만 존재할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문자 그대로 1,2초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의 '지금'이란 과거에 집착하거나 미래를 염려하지 않고 우리가 존재하기로 선택한 순간을 뜻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일어난 일 또는 언젠가 일어날지도 모를 일에 대한 희망이나 걱정을 우리가 원하는 만큼 멀리 밀어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집중하고 온전한 자신이 되어보십시오. 현재에,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 보십시오. 과거에 시도해 봤으나 실패했습니까?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게 바로 현재의 좋은 점입니다. 현재는 끊임없이 다가와 우리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고 있지 않습니까.
"인내하라"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는 겉모습만으로는 오해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첫 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 모두의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오해하고 쉽게 속아 넘어갑니다. 그런 뒤에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기회를 놓치고 두려워하거나 분노하죠. 특히 우리가 여유를 갖고 시간을 들여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을 때 그렇게 될 가능성은 더 커집니다. 세상은 흙탕물과 같습니다. 이를 꿰뚫어 보려면 먼저 흙먼지를 가라앉혀야 합니다. 인내심을 갖고 고요하게 기다리면 진실이 우리 눈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일기를 쓰라"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는 일기를 쓴다는 건 마음속의 동요와 어리석음을 몰아내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일이고 철학을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하면서, 일기 쓰기를 '영적 전투의 무기'라고 일컬었습니다. 일기 쓰기는 머릿속이나 마음속에 응어리를 쌓아두는 대신 종이 위에 쏟아 붓는 일입니다. 꼬리를 무는 잡생각을 내버려 두거나 섣부른 추측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대신 종이에 적어 내려가며 스스로 검증하게끔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머릿속에서 짖어대는 개를 조용히 시킬 수 있도록, 다가올 하루를 준비할 수 있도록, 지난 하루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하루 동안 어떤 통찰을 얻었는지 메모해 보십시오. 일기 쓰기를 시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하루 중 언제 일기를 쓰는 게 가장 이상적일까요? 또 시간을 얼마나 들여서 일기를 써야 할까요? 일기를 쓰는 데에는 옳은 방법도 그른 방법도 없습니다. 오직 중요한 건 그저 쓰는 것입니다.
"침묵하라"
"침묵하지 않는 자는 사고할 수 없다." 영국의 비평가이자 역사가인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의 말입니다. 더 나은 사고를 하고 싶다면 우리는 이 조용한 순간을 붙잡아야 합니다. 정보를 제한하고 소리를 작게 줄여야 우리 삶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더욱 깊이 알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라도 입을 다물고 있으면 마침내 이 세상이 우리에게 하려고 했던 말을, 또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고요함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이를 붙잡아야 합니다. 침묵을 구해보십시오. 째깍거리는 손목시계의 바늘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흘러가버린 시간은 절대 돌아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먼저 자신감을 찾으라"
미국의 제18대 대통령 율리시스 S.그랜트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시련과 재정난에 허덕여야 했습니다. 그는 세인트루이스에서 설거지를 하고 땔나무를 내다 팔며 간신히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랜트와 우연히 마주친 군대 동기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었습니다. "이런, 깜짝이야! 그랜트, 자네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 그랜트의 대답은 단순했습니다. "빈곤이란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네." 자신감 있는 사람, 힘든 상황에서도 평화를 유지하는 사람의 대답이란 이런 것입니다. 가난한 상황을 그랜트가 원해서 선택한 게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곤궁한 상황이 자신의 자존감에 영향을 미치게 허락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하며 있는 힘껏 애썼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자기 자신을 혐오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창피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랜트는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 곤궁했던 시기에 아내와 함께 살았던 낡은 오두막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때 보좌관 한 사람이 그랜트를 보고 얼마나 대단한 인생역전이냐며 마치 서사시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랜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합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소만." 이 또한 자신감이 없다면 나올 수 없는 반응입니다. 자신감을 지닌 사람에게는 요란한 축하도 찬양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신감이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할 필요에서 벗어나 우리의 기준을 우리 스스로 정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자유입니다. 자신감 있는 사람은 타인과의 견해 차이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열등감 때문에 올바른 의견을 그릇된 의견으로 바꾸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불필요한 갈등과 불확실함, 분노를 제거하는 행동이 비로소 고요를 얻을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시련에 맞닥뜨리기도 할 것입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고 할 때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순간도 마주할 것입니다. 이러한 시기를 괴로움의 원천으로 여길지 즐거운 도전으로 여길지 결정하는 것이 바로 자신감입니다. 일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마다 비참한 마음이 든다면, 또는 일이 뜻대로 흘러갈 때에도 불안과 의심으로 스스로의 성과를 깎아내리면서 그 시간을 즐기지 못한다면 인생은 지옥이 되지 않을까요. 물론 완전한 자신감이나 마르지 않는 자신감 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흔들릴 수 밖에 없고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혼란한 내면을 차분히 들여다보며 자신감을 찾아야 합니다. 불안에 먹이를 주지 마십시오. 과대망상에 먹이를 주지 마십시오. 이 둘 모두 고요를 가로막는 방해물입니다. 자신감을 찾아야 합니다. 당신은 이미 자신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혼의 영역
두 번째 영역은 마음을 움직이고 생명을 부여하는 영혼입니다. 정신이 머리로 하는 일, 지적인 영역이라면 영혼은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이며 영적인 영역입니다. 좋은 영혼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아래의 내용을 기억하십시오.
- 도덕적으로 행동하라. 이는 더 나은 삶을 위한 행동의 기본원칙이다.
- 내면의 아이를 감싸안아라.
- 욕망에서 비롯된 충동은 진정한 만족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 시인의 눈으로 아름다움을 발견하라.
- 분노하지 마라.
"도덕적으로 행동하라"
'덕'이라는 개념이 조금 답답하게 들린다면 덕 있는 삶이 그 자체로 가치 있다는 사실을 돌아보길 바랍니다. 옳고 그름을 모르는 사람만큼 평온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도덕률이 결여된 탓에 모든 결정을 상세히 검토해야 하고 모든 유혹을 두루 살피고 경계해야 하는 사람만큼 지치는 사람도 없습니다. 자신에게 가치 있는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 도와 예를 알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 도덕적 자제심이 있는 사람, 밤낮없이 이러한 미덕에 편안하게 의지하는 사람, 이들이 바로 고요를 찾은 사람들입니다. 어려움이나 스트레스, 심지어 두려운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영혼의 힘을 찾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높은 차원의 도덕률을 길러야만 합니다. 덕이 있는 곳에 행복과 아름다움이 존재합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말합니다. "군자는 침착하고 너그러운 반면 소인은 끊일 새 없이 얼굴에 근심을 가득 띈다(군자탄탕탕君子坦蕩蕩, 소인장척척 小人長戚戚)."
"내면의 아이를 감싸 안아라"
삶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인내와 공감, 진정한 자기 사랑이 필요합니다. 상처를 받거나 배신을 당하거나 예기치 못한 힘든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자신이 '몇 살'짜리의 감정 반응을 보이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게 바로 당신의 내면의 아이입니다. 당신이 그 아이를 안아줘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말해줘야 합니다. "이봐, 친구. 괜찮아. 네가 상처받았다는 걸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널 돌봐줄게." 이 아이를 조심스럽게 감싸 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아픈 감정을 달랠 수 있으며 편안한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아픔을 만든 뿌리를 볼 수 있게 되고 우리가 받는 고통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지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고통은 경감됩니다.
"욕망에서 비롯된 충동은 진정한 만족을 줄 수 없다"
배관공이든 대통령이든 간에 잘못된 욕망에서 비롯된 충동의 노예가 된 자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잘못된 욕망의 가장 흔한 형태는 시기입니다. 질투나 시기에 흔들리는 사람은 또렷하게 사고하거나 평화롭게 살 기회조차 얻지 못합니다. 내가 원하는 걸 얻으면 내게 어떤 일이 생길까? 그러면 내 기분은 어떨까? 실제로 대부분의 욕망은 비합리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 그 감정을 분석하려면 고요를 갖추고 있어야만 합니다. 고통과 불안으로부터의 자유야 말로 진정한 쾌락입니다. 무언가를 원하는 행위가 당신을 비참하게 만든다면 그게 정말로 이득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충동을 느끼고 충동에 저항하고, 가만히 앉아 충동을 들여다보고 충동을 흘려보내기. 이렇게 하면 우리는 정신력을 기를 수 있고 이 세상에서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욕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묻고 예측하는 사람만이 충동을 이겨내고 후회할 일을 멈출 기회를 얻습니다. 그런 사람만이 진정한 쾌락은 정직하고 안정적이며 행복하고 안전한 영혼 속에만 깃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시인의 눈으로 아름다움을 발견하라"
아름다움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곳에 존재하고 우리가 허락하기만 한다면 그 아름다움이 우리를 살지게 할 것입니다. 먼지 수북한 트렁크에 찍힌 고양이의 발자국, 도시의 아침 풍경, 환풍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증기, 비가 막 내리기 시작했을 때 대기에 스미는 아스팔트 냄새, 혼잡한 도롯가의 가로수길 사이로 큼지막한 트럭들이 지나가며 만들어 내는 직선, 놀다가 지칠 대로 지친 아이의 즐거움이 묻어 있는 장난감, 수백 년간의 독자적이 발전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도시. 이제 보이기 시작하시나요? 바쁜 삶 속에 고요가 드물다는 것, 또 있더라도 너무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건 참 아이러니입니다. 사실 세상은 고요를 다 써버릴 수도 없을 만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그저 아무도 들여다보고 있지 않을 뿐입니다. 현대 생활의 권태로 고통받는 이들과 트라우마를 겪고 있거나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운 이들에게 역사학자 존 스틸고 교수는 아주 간단한 조언을 건넵니다.
당장 나가라. (중략) 밖으로 나가서 부지런히 움직인 다음, 휴식을 취하고 여유를 갖고 주변을 둘러봐라.
조깅하지 말고 달리도 마라. (중략) 대신 인접한 시골길, 도심의 골목, 교외의 대로에 온 신경을 기울여라.
걸어라. 산책하라. 어슬렁거려라. 해안을 따라 하염없이 자전거를 타라. 탐험해 보라.
당신을 삶의 아름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일을 허락하지 마십시오. 세상을 신성한 곳으로 여기고 모든 경험을 성스럽게 해 보십시오. 무엇이든 이런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당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경탄하십시오. 우리는 언제나 모든 일을 멈추고 주변에 수없이 존재하는 아름다움에 몸을 담글 수 있습니다. 그 아름다움 속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아름다움 속에서 깨끗해져 보시길 바랍니다.
"분노하지 마라"
분노에 더딘 이는 용사보다 낫고, 자신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정복한 자보다 낫다. - 잠언 16장 32절
분노보다 사람을 멍청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분노가 순간적으로는 원초적 동기를 발산하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안도감을 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이후로 얼마나 많은 좌절감을 야기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분노를 터뜨린 이후에 사과를 하거나 선한 일을 훨씬 더 많이 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받은 상처는 그대로 남고 분노를 표출한 결과는 반드시 따라옵니다. 우리가 고함쳤던 상대는 이제 적이 되었고, 홧김에 부서뜨린 서랍장은 이제 끊임없는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욕망은 주의하면 되지만 분노는 제압해야 합니다. 분노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불쾌하게 만드는 감정은 못 본 척해도 됩니다. 내면의 극단적인 감정이 흩어질 시간을 주면서 천천히 행동하면 됩니다. 고요에 도달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우리가 여유를 가질 수 있는지, 분노하지 않기를 택할 수 있는지, 분노가 아닌 다른 감정을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몸의 영역
세 번째는 정신과 영혼의 실행자인 몸의 영역입니다. 지속적인 내적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신체적 고요를 통해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저자는 신체적 고요를 위해 아래의 방법을 제안합니다.
- 규칙적인 일상과 좋은 루틴을 유지하라.
- '아니요'라고 말하라.
- 산책하라.
- 취미활동을 하라.
"규칙적인 일상과 좋은 루틴을 유지하라"
윈스턴 처칠이 삶을 생산적으로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규칙적인 일상 덕분이었습니다. 격정과 동요는 루틴 속에서 가라앉습니다. 좋은 루틴은 큰 편안함과 안정을 주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활기 넘치고 성취감 있는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발판이기도 합니다. 뛰어난 사람들은 완전한 자유가 곧 악몽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탁월해지려면 반드시 질서가 필요하다는 사실과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좋은 습관이야말로 확실하고 안전한 천국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 William James는 습관을 적이 아니라 협력자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하루, 나아가 우리의 인생을 도덕적이고 정연하고 고요하게 만들 수 있으며 혼란스러운 세상에 대항하는 일종의 방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들이지 않고 저절로 되게끔 만드는 일상의 과정이 많아질수록 더 높은 정신력을 갖게 되고 더 자유로워지므로 더욱 적절한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안을 정리해 보십시오. 짜임새 있게 하루 일과를 계획해 보십시오. 방해 요소를 제한하고 선택해야 할 일의 개수를 줄여보십시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격정과 동요는 알아서 갇히게 될 것이므로 당신의 삶에 문제를 훨씬 덜 일으킬 것입니다.
"'아니요'라고 말하라"
우리는 '아니요'라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무대에 오르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단 며칠 동안이라도 무엇인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무가치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손으로 고요를 박탈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한층 높은 수준의 역량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페이스 조절을 하지 못하는 장거리 달리기 선수, 하락하는 시세를 견디지 못하는 자산 관리사. 이들이 자신의 직업에서 무위無爲의 기술을 배우지 못한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무위의 기술을 인생에 적용하지 못한다면 성공은 잊어야 합니다. 당신의 몸은 피로에 지쳐 쓰려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아니오'라고 말해야 할지 알게 된다면 정말 중요한 문제에 '네'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산책하라"
어떻게 걷기가 우리를 고요로 이끈다는 걸까요? 산책은 칼로리를 소모한다거나 심장박동수를 올리기 위한 일이 아닙니다. 아니, 애초에 무엇인가를 위해서 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산책은 존재, 초월, 마음을 비우는 것, 당신을 둘러싼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아차리고 감상하는 것에 대한 개념을 표현하고 구체화하는 행동입니다. 이제는 떨쳐내야 할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떠오르는 생각을 향해 다가가야 할 때입니다. 좋은 산책을 하는 비결은 인지하는 것입니다. 현재에 집중하면서 움직임에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휴대폰을 끄십시오. 삶을 짓누르는 문제들을 잊으십시오. 땅이 당신을 받치고 밀치는 느낌을 느껴보십시오.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충동이나 일에 대한 책임감이 당신을 잡아끄는 것 같다면 자신을 조금 더 밀어붙이십시오. 전에 가본 적 없는 방향으로 갑자기 발길을 돌리거나 언덕 위로 올라가 보십시오. 낯설고 새로운 주변 환경을 느끼고 여태 맛본 적 없는 공기를 마셔보십시오. 길을 잃어도 보십시오. 당신을 찾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 있어보십시오.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십시오. 우리 의식의 깊숙한 부분을 열고 더 높은 수준의 정신에 접근하고 싶다면 몸을 움직이고 혈액이 순환하도록 해야 합니다.
"취미활동을 하라"
우리는 취미활동을 통해 나 자신을 위한 성취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가 활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빈둥거리며 아무것도 안 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리스에서는 이를 스콜레 Schole, 즉 배움으로 간주합니다. 역사적으로 여가는 생존을 위하여 노동으로부터 짧게 취하는 자유, 지적 또는 창조적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자유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결국 여가 활동은 배우고 익히고 더 높은 차원의 것을 추구하는 활동입니다. 독서, 복싱 등 뭐든 좋습니다. 취미 활동을 통해 긴장을 풀고 평화를 찾으십시오. 독일의 철학자 요제프 피퍼Josef pieper는 "'한가하게 있는' 능력은 인간의 영혼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힘"이라고 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놀랍게도 영혼을 재충전하고 강화하는 것은 육체적 상태, 그러니까 육체적 활동입니다. 여가 활동은 단지 외적 명분이 없을 뿐 행위의 무재가 아니라 행위 그 자체입니다. 보수를 받기 위해서 또는 사람들을 감동시키기 위해서 여가 생활을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여가 활동은 당신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이 일을 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너무 힘들면 그만둬도 됩니다. 그저 경험하는 게 전부일뿐입니다. 여가를 즐길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몰두하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관해 알아간다는 것은 기분 좋은 성공입니다. 더 높은 것을 추구하며 성취감과 즐거움을 찾는 것. 그것은 이미 당신에게 있습니다. 당신을 위한 것이니 망설이지 말고 취하십시오. 당신은 취미가 필요하고 취미를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 거기에 고요가 달려 있습니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서 감사의 말을 전하며, 고요에 접근하는 가장 쉽고 단순한 방법은 감사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매일 감사한 일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위 내용은 책 '스틸니스(저자 라이언 홀리데이, 옮긴이 김보람, 출판사 흐름출판)'에서 요약, 발췌한 내용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원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