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장기하의 음악을 좋아합니다. 「ㅋ」 「초심」 「그건 니 생각이고」 「해」 등 무심한 듯 울림 있는 가사가 장기하 음악의 매력입니다. 제목을 보는 순간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이번 리뷰는 그의 언어 그대로 정리해 볼까 합니다.
책을 좋아하시죠?
나(장기하)는 책을 잘 못 읽는다. 일단 속도가 아주 느리다. 어떤 책인지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몇 줄 읽다보면 딴생각에 빠진다. 그것을 깨달으면 마음을 다잡아 다시 글에 집중해 본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또 딴생각. 이런 과정의 반복이다. 다 읽은 문장을 한 번 더 읽을 때도 많다. 시선만 이동했을 뿐 내용은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고, 과연 내가 정확히 읽은 것인지 의식이 들어서 앞으로 돌아갈 때도 있다. 이런 식이다 보니 도저히 빨리 읽을 수가 없다. 따라서 당연히 많은 책을 읽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읽은 책들의 내용만은 정확히 기억하는 편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중략) 반면 "책을 좋아하시죠?"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 편이다. 이름이 웬만큼 알려진 가수이기 때문에 이래저래 인터뷰할 기회가 많고, 아무래도 서울대 출신에 대해 흔히들 가지는 이미지가 있다 보니 인터뷰하시는 분들이 으레 그런 질문을 하나씩 끼워 넣으시는 것 같다. 물론 시원스레 "네"라고 대답하는 일은 잘 없다. (중략)
사실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최근에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앞으로는 인터뷰 자리에서든 사적인 모임에서든 그냥 그렇게 말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게 결심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나 스스로에게 '나는 책을 좋아하는가?' 하고 물을 때에도 늘 선뜻 그렇다고 답하지 못했었다. 왠지 책을 집중해서 죽 읽어나간 후에 누가 물어도 책의 내용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그래! 나는 책을 좋아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
맞다. 상관없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애초에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읽어야 하는 책의 양이나 읽는 속도를 누가 정해놓았다거나, 독서의 목표가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라면 잘 읽는 게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 아닌가. 좀 오래 걸리더라도, 또 많은 양을 읽지 못하더라도 책 읽는 시간이 즐겁다면 누구나 책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중략) 글로 써놓고 보니 참 당연한 이야기다. 하나 마나 할 정도다. 그런데 이걸 인정하는 데 왜그리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쨌든 분명한 건 내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써왔고, 또 그게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 보니 내 삶에 이런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도 모르게 골칫거리로 삼아 씨름하게 되는 문제들 중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거의 모든 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흰쌀밥과 기분
어쨌든 나는 흰쌀밥을 멀리할 생각이 없다. 몸에 안 좋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음식을 남들에게 권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먹게 될 듯하다. 이유는 한 가지다. 먹으면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기분 탓'이라는 말을 쓰는 이들이 많아졌다. 나도 종종 쓴다. 기분이란 주관적이고 불명확해서 이런저런 일들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방해한다는 의미로들 쓰는 듯하다. 예를 들어, 만약 내가 "나는 적어도 하루에 한 끼는 흰쌀밥으로 먹어야 힘이 나"라고 말한다면, 흰쌀밥이 건강에 안 좋다고 굳게 믿는 친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기분 탓이야." 이 표현이 널리 쓰이고 있다는 것은,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 '기분'을 좀 하찮게 여기고 있다는 뜻일 터다. 하지만 나는 기분만큼 믿을 만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기분이 어떤지를 잘 살피는 일이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에서 좋은 기분보다 중요한 것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음식에 국한시켜 이야기하자면, 기분대로 먹으면 건강도 챙길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중략) 예를 들어, 나는 양념치킨을 좋아하긴 하지만 자주 먹지는 않는다. 먹는 동안에는 기가 막히게 맛있지만, 먹고 나면 여지없이 기분이 안 좋아지기 때문이다. 일단 아주 무겁게 배가 부르다. 같은 양의 두부부침이나 생선구이를 먹고 배가 부른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그리고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목이 말라 계속 물을 마시게 된다. (중략) 물론 이것은 요즘의 일이다. 이십 년 전에는 양념치킨을 먹고 나서 괴롭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는 내게 양념치킨을 먹는 것은 순수하게 즐거운 일이었다. 그래서 지금보다 훨씬 많이 먹었다. 그때의 나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양념치킨 자주 먹기를 여유 있게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의 '기분'이 양념치킨을 줄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나는 '기분'대로 그렇게 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대략 건강한 '기분'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유의 그늘
"하고 싶은 것 하며 사니 좋겠다"는 말을 듣는 일이 종종 있다. 부러워서 하는 말이니 으쓱할 만도 한데, 그때마다 조금 쓸쓸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나도 늘 좋은 것만은 아닌게'라는 마음이었달까. 자유롭다는 것은 곧 막연하다는 뜻이고, 막연한 삶은 종종 외롭다. 이끌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든 헤쳐나가야 할 때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지 않겠는가. 내 경우에는 매일매일이 그런 셈이다. 물론 우는 소리를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내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다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자유롭다고 자부하는 나의 삶도 늘 시원스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퇴사에 관한 산문들을 읽으며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직장인분들이라면 십중팔구 나 같은 사람을 부러워할 것이다. 하지만 뭐랄까, 나는 삶이란 늘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더 외로워질 것도 각오해야 한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란다. 자유 따위 좇아봤자 소용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글에서만도 여러 번 반복했지만 나는 자유를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고, 따라서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분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당신의 오늘 하루가 원하는 만큼 자유롭지 못했다고 해도, 바로 그 때문에 누렸던 무언가는 있을 것이다. 내가 하루종일 막막함에 시달렸고 그래서 방금 밤 산책을 하며 쓸쓸함을 느끼긴 했지만 어쨌건 오늘도 마음대로 사는 데 성공한 것처럼 말이다.
피아노를 못쳐도
후회를 극복하기 위해 나는 내 나름의 이론을 만들었다. 그 이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연주를 잘하는 것과 좋은 음악을 하는 것은 별개다. 피아노 실력을 1부터 10까지 매길 수 있다고 치자. 1이 최하 10이 최상이다. 보통의 상식대로라면 1의 실력을 가진 사람에 비해 10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 좋은 음악을 할 수 있는 확률이 크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10의 사람이 하는 음악을 1의 사람은 따라 할 수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반대의 경우다. 1의 사람이 하는 음악 역시 10의 사람 입장에서는 절대로 따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좋은 음악이란 창의적인 음악이고 창의성은 실력에 비례하지 않는다. 따라서 실력을 높이려고만 노력할 게 아니라 각자의 실력에 어울리는 나름의 창의적인 세계를 구축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중략) 십여 년 전 피아노 앞에서 떨쳐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을 나는 지금 다시 떨쳐내려 하고 있다. 그때는 후회였지만 지금은 후회라기보다는 좌절감이다. 뚜렷한 대상은 없지만 열등감이기도 하다. 아마도 내가 바라는 나 자신에 대한 열등감일 터이다. 생각해 보면 이런 종류의 감정은 후회보다도 더 쓸모가 없다. 그야말로 백해무익이다. 어쩌면 예전에 내가 떨쳐냈던 것도 후회를 가장한 열등감이었는지 모른다. 음악을 하고 싶은데 실력이 모자란 데서 오는 열등감. 그리고 열등감은 쓸모없고 말고를 떠나서, 후회만큼 쉽게 씻겨나가지 않는 감정인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좀 열등하다 해도 별로 상관없고,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피아노를 못 쳐서 아전인수격으로 지어낸 내 이론은 십여 년 동안의 음악활동을 거치며 좀 더 힘을 얻은 세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어쩌면 나의 실력이 아직도 대단치 않다는 것은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여태까지 늘 내가 정한 이론대로, 어쭙잖은 실력으로도 요리조리 밀어붙여왔다. 그렇게 만든 음악을 좋아해 준 분들도 꽤 있었다. 지금의 이 일천한 실력대로 또 한 번 알뜰하게 뭔가를 만들어낸다면, 꽤나 나다운 무언가가 나오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다시 한번 서핑
아마 남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고 나 자신에게 묻는 일이 많다. 새로운 커리어를 위해 혼자 이래저래 고민하는 것이 주된 일상인 요즘이라 더더욱 자주 그러게 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나는 답을 하지 못한다. 그럴 때면 막막해진다. 빨리 뭘 어떻게 좀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조바심이 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여태껏 살면서, 멋진 순간들은 다 내 의도나 기대와는 무관하게 찾아왔다. 영화를 보며 사랑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것도, 내 인생에 단 한 번 만년설 위를 걸어본 것도, 내 노래로 무대에서 수만 관객의 환호를 받은 것도, 내가 기억하는 가장 깊었던 사랑의 순간들도, 그리고 창문 밖으로 가슴 시릴 만큼 파란 일요일의 하늘을 바라보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말이다.
(중략) 나는 다시 한번 망망대해 위의 서퍼를 떠올린다. 대단한 항해를 계획하지 않아도 파도는 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파도를 맞이하고 그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전부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푸른 바다 위를 질주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위 내용은 책 '상관없는 거 아닌가?(저자 장기하,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발췌, 요약한 내용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원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