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릿속 목소리(자기도 모르게 쉼 없이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들)에 동일화되어, 그 생각하는 자를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하지만 당신이 '나'라고 말할 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당신 자신이 아니라 「에고ego」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우리는 에고가 아니라 그 깊은 곳에 있는 진정한 자기 자신에 눈을 떠야 합니다.
우리는 왜 「에고ego」에서 벗어나야 하는가?
에고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불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에고는 모든 상황에서 '나'를 말하고 싶어 하는 우리 안의 존재입니다. 에고는 그 자체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무엇인가에 자신을 동일화합니다. 그 '무엇인가'는 지위나 명예, 명품, 외모 등등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국 자기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과 동일화되든 에고는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계속 동일화될 외부의 대상을 찾아다닙니다. 그 끝없는 욕망 속에서 우리는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괴로워할 수 없습니다.
또, 모든 에고는 자신의 의견과 견해를 사실 그 자체와 혼동합니다. 더 나아가, 객관적인 사건과 그 사건에 대한 자신의 반응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불행의 주요 원인은 결코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당신의 생각입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생각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생각을 상황으로부터 분리시켜야만 합니다. 상황은 언제나 중립적이며, 언제나 있는 그대로일 뿐입니다. 대부분 당신이 생각하는 것들이 당신이 느끼는 감정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행복을 찾아다닌다면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으로부터의 자유는 지금이라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대신, 있는 그대로와 마주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에고ego」에서 벗어나려면
에고로부터의 자유는 사실 큰 일이 아니라, 아주 작은 일입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생각과 감정이 일어날 때 그것들을 알아차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것은 정말로 하나의 '행위'가 아니라 깨어 있는 '바라봄'입니다. 저자는 여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합니다.
호흡 자각하기
호흡의 자각은 당신을 현재의 순간으로 오게 합니다. 이것이 모든 내적 변화의 열쇠입니다. 호흡을 의식할 때마다 당신은 절대적으로 현재의 순간에 존재합니다. 여러분이 이를 직접 해본다면, 어떤 생각을 하면서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호흡에 의식을 집중하면 마음의 활동이 정지되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현재의 순간 속으로 들어오는 것과 의식의 잃음 없이 생각을 멈추는 이 두 가지가 사실은 하나입니다. 공간 의식이 등장한 것입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가능한 한 자주 호흡을 자각하고, 그럼으로써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 좋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릴 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잠시 멈추고 하늘과 나무와 꽃과 연인 또는 아이를 바라볼 때, 그것과 함께 자기 내면의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새로운 경험하기
새로운 광경이나 소리가 일어나면 그것을 지각하는 최초의 순간에 습관적인 생각의 흐름에 짧은 중단이 일어납니다. 그 대상이 낯선 것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의식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납니다. 감각 지각을 위해서는 의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매우 일상적이지 않은 장면이나 소리는 이렇게 당신을 '말을 잃은' 상태로 만듭니다. 나아가 내면에도 좀 더 긴 틈을 가져옵니다. 그 틈이 내적 공간입니다.
이런 내적 공간을 느낄 수 있는지가 에고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결정합니다. 왜냐하면 에고는 공간 차원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짧은 공간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때 그것들을 의식할 수 있게 되면, 그 공간들은 더 확장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확장될 때, 생각의 간섭 없이 사물을 지각하는 기쁨을 점점 더 자주 맛볼 수 있습니다. 주위 세상이 새롭고 신선하며 생생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에고로부터 깨어난 행동의 세 가지 방식
받아들임
즐겁게 할 수 없는 일일지라도, 최소한 그것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임을 받아들일 수는 있습니다. 받아들임이란 지금 이 상황, 이 순간이 나에게 그 일을 하라고 요구하므로 기꺼이 그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받아들임의 상태에서 행동한다는 것은 그 일을 하는 동안 당신이 평화롭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겉에서 볼 때 받아들임은 수동적인 상태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적극적이고 창조적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무엇인가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즐거움
당신이 하는 일을 실제로 즐겁게 할 때, 저항하지 않고 항복함으로써 오는 평화는 살아있음의 느낌으로 바뀝니다. 즐거움은 깨어 있는 행동의 두 번째 방식입니다. 과거나 미래 대신 현재의 순간을 삶의 중심점으로 삼을 때, 자신이 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능력은 극대화됩니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삶의 질도 높아집니다. 즐거움은 '순수한 있음'의 역동적인 측면입니다.
'의미 있는' 일이 당신의 삶 속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하는 일을 즐겁게 하기 위해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대신, 자신의 일을 이미 즐겁게 하고 있을 때 외부 차원에서의 확장과 긍정적인 변화가 당신 삶 속에 일어날 것입니다. 기쁨은 당신이 하는 일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기쁨은 당신의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당신이 하는 일 속으로 흘러들어 가며, 그렇게 해서 이 세상 속으로 흘러들어 옵니다.
열정
열정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깊은 즐거움을 느낌과 동시에 목표와 비전의 요소가 더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는 일의 즐거움에 목표가 더해지면 에너지 장 또는 진동 주파수가 변화합니다. '지금 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보다 '목표에 도달하는 것'을 더 많이 원할 때, 당신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스트레스를 느끼면서 하는 일은 반드시 질과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또 스트레스와 불안과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도 강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열정은 에고의 욕망이나 스트레스와는 다릅니다. 열정은 대결하지 않습니다. 열정에 따른 행위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에고의 욕망은 늘 무언가로부터 빼앗으려고 시도하지만 열정은 자신의 풍요로부터 나누어 줍니다. 열정은 적대적 상황이나 사람들의 비협조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장애에 부딪쳐도, 상대방을 포용하거나 양보함으로써 그 대립하는 에너지를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바꿔 놓습니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당신의 존재는 '나는 이것이다' 또는 '나는 저것이다'가 아니라 '나는 있다'로 설명됩니다.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는가가 당신의 운명을 실현하는가 아닌가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하는 일을 어떻게 하는가는 당신의 의식 상태에 의해 결정됩니다. 자신의 의식 상태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삶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의 에고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에고 너머, 그 생각을 관찰하고 있는 진짜 당신이 보이시나요?
*위 내용은 책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저자 에크하르트 툴레, 옮긴이 류시화, 출판사 연금술사)'에서 발췌, 요약한 내용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원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